부탄 옛 부족의 독특한 결혼 전통 :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

부탄의 인구는 80만 명이 채 되지 않지만 다양한 민족과 부족이 존재하며 각기 다른 전통과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부탄의 일부 지역에서는 과거부터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 같은 결혼 형태가 유지되어 왔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는 드문 관습이지만 부탄의 전통적인 농경 및 목축 생활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부탄의 산악 지형과 자원의 제한성은 가족 간의 협력을 강조하는 결혼 형태를 발전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과거 부탄에서 이러한 결혼제도를 유지했던 부족들은 누구이며, 그들이 가진 독특한 전통은 무엇일까?

 

1. 브로크파 부족 (Brokpa) : 일부다처제와 가축 경제

브로크파 부족은 부탄 동부 지역, 특히 메룽 계곡과 라다크 지역에 거주하는 유목민 부족이다. 이들은 주로 야크를 키우며 살아가는데 가축은 이들의 경제와 삶의 중심에 있다. 브로크파 부족에서는 과거 일부다처제가 흔한 결혼 형태였다. 한 남성이 여러 명의 아내를 두는 이유는 노동력을 극대화하고 가축을 더욱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이었다. 부탄의 산악 지역은 농경이 어렵고 생활 환경이 가혹했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이 많을수록 생존 가능성이 컸다. 따라서 브로크파 부족은 남성이 여러 명의 아내를 두고 각기 다른 역할을 맡기면서 가축을 돌보고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통이었다.

2. 라야 부족 (Layap) : 여성 중심의 일처다부제 전통

라야 부족은 부탄 북서부의 라야(Laya)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 부족으로, 이들은 해발 4,0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생활한다. 이 부족은 과거부터 일처다부제 문화를 유지해 왔다. 한 명의 여성이 여러 명의 남편을 두는 이유는 자원을 효과적으로 분배하고 가문의 재산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부탄은 지형적으로 경작이 가능한 토지가 많지 않으며 땅을 나누는 것이 가족 생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형제들이 한 여성과 결혼하여 가족 재산을 유지하는 방식이 합리적이었다. 이를 ‘형제 혼인(polyandry)’이라고 하며 주로 형제들이 한 명의 아내를 공유하면서 가문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형태를 띠었다.

라야 부족의 여성들은 가정 내에서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경제적인 의사 결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이유는 여성 한 명이 여러 남성을 남편으로 맞이하는 경우, 자연스럽게 집안의 재산 관리와 노동력 분배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남편들은 가축을 돌보거나 무역을 위해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고 여성들은 집안의 살림과 경제를 책임지는 역할을 했다.

3. 멘박 부족 (Menbak) : 일부다처제와 부족 내 연대 강화

멘박 부족은 부탄과 인도의 국경 지역에서 발견되며 이들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부족 중 하나다. 과거 멘박 부족에서는 일부다처제가 일반적인 결혼 형태로 존재했다. 이 역시 경제적인 필요성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특히, 멘박 부족은 한 남성이 여러 명의 아내를 맞이할 경우 아내들이 협력하여 농업과 가축 관리를 분담하는 형태로 생활했다.

멘박 부족에서 일부다처제는 단순히 한 남성이 여러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협력과 유대를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부족 내에서는 가족 간의 협력을 강조하며 집안의 여성들이 서로의 아이를 돌보거나 경제 활동을 함께하는 것이 전통문화였다. 이러한 문화는 현대에 들어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일부 마을에서는 과거의 일부다처제 전통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4. 서부 부탄의 종카 부족 (Dzongkha) : 일부다처제와 정치적 이유

서부 부탄에 거주하는 종카 부족은 전통적으로 부탄의 문화와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온 민족이다. 이들 부족에서는 과거 일부다처제가 정치적 이유로 시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귀족 계층에서는 가문 간의 결속을 강화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다처제가 이용되었다. 한 남성이 여러 명의 아내를 두는 경우, 각각의 아내들은 서로 다른 가문 출신이었고 이를 통해 부족 간의 유대를 강화할 수 있었다.

특히, 부탄의 왕족이나 귀족 계층에서는 일부다처제가 종종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이는 가문의 영향력을 넓히는 중요한 방법이었다. 현대 부탄에서는 이러한 전통이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잔재가 남아 있다.

5. 도카 부족 (Doya) : 일처다부제와 토지 보존 문화

도카 부족은 부탄 남부의 소수 민족으로, 이들 역시 일처다부제를 전통적으로 유지해 온 부족 중 하나다. 도카 부족도 앞서 기술한 ‘라야’부족과 같이 ‘형제 혼인(polyandry)’ 형태의 결혼 전통으로 척박한 히말라야 산악지방의 자연 속에서 가족의 생존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도카 부족의 결혼 문화는 다른 부족과 마찬가지로 점차 현대화되면서 변화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이러한 형태가 지역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현재 도카 부족의 젊은 세대는 점점 단혼제(monogamy)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지만, 일부 고령층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일처다부제 문화에 익숙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6. 부탄의 전통적 결혼제도의 변화와 현대적 시각

과거 부탄의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 문화는 경제적, 지리적, 사회적 요인에 의해 발전한 독특한 결혼 형태였다. 하지만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부탄도 점차 단혼제를 기본적인 결혼 형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교육과 법률 개정을 통해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 문화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혼 문화는 단순히 남녀 간의 관계를 넘어, 부족 사회의 경제적 안정과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시스템이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탄의 이러한 독특한 전통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는 과거의 풍습이 남아 있다. 부족 전통과 현대적 변화가 공존하는 부탄의 결혼 문화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인간 사회가 환경과 필요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적응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